수작이다. 동시에 결코 걸작이 될 수 없는 작품이다.
수작과 걸작의 차이를 쉽게 말하자면 잘 만든 작품, 흠을 잡을 곳 없는 명품의 차이다.
벌새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아쉬운 지점 때문에 아쉽게 수작에 머물렀다.
김보라 감독의 첫 장편 작인 '벌새'는 1994년 알 수 없는 거대한 세계와 마주한 은희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은희는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다.
그가 살고 있는 삶의 테두리는 우리 모두를 포용하고 있는 곳이며, 그가 겪는 일들조차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렇기에 은희는 단순히 은희가 아니다.
은희가 영철이가 될 수도, 미영이가 될 수도 있다. 나아가 우리네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벌새' 안에서 그려지는 은희는 스크린이란 경계를 허물어 우리와 마음을 잇는다.
사실 등장인물에 관객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감독이나 작가가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벌새'가 특별한 것은 특정 연령층의 공감만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앞서 말했듯이 '벌새' 속 은희는 거대한 세계와 마주한다.
1994년도는 유독 사회적으로 뜨거웠던 시기다.
성수대교 붕괴, 김일성 사망 등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이런 일들이 펼쳐지는 영화 안에는 가부장적인 아빠, 속을 알 수 없는 엄마, 아빠가 되어가는 오빠, 엄마가 되어가는 언니, 그리고 은희가 되어가는 은희가 있었다.
굴직한 사건과 다양한 인물들 속에 놓인 은희는 우리 마음을 동요시킨다.
은희가 겪은 일들이, 함께 하는 인물들이 결코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며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은희를 보고 있자면 우리도 모르게 기억에 새겨진 사건과 사람 간에 일들을 다시금 되풀이하게 만든다.
이 부분이 영화를 수작으로 만드는 포인트 중 하나이다.
다시 말하지만 '수작'이다. '벌새'는 '걸작'이 아니다.
이유를 말하자면 '연출의 미흡함'이다.
장편영화를 첫 제작하는 것치고 긴 호흡을 지루하지 않게 세밀히 이끈 것은 박수를 보내도 아깝지 않을 일이다.
다만, 그 긴 호흡에 중간중간 툭툭 끊기는 부분이 있어 아쉽다.
첫 번째는 인물의 감정 흐름의 부자연스러움, 두 번째는 옥에 티를 만든 장면의 오류이다.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최대한 감춰서 말하자면, 우리네 아버지들은 그렇게 자식 앞에서 감정을 잘 표출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어떤 격한 감정이 밀려와도 말이다.
두 번째 옥에 티 역시 자세히 말할 순 없다. 하지만 알리자면, 한자 학원에서 발생한다.
칠판에 '가나다'가 적혀있는데 갑자기 '다 나가'가 씌어있는 꼴이다. 궁금하면 영화를 통해 직접 확인하길 바란다.
이러한 점은 매우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영화는 완성품이다. 한 번 내놓은 결과는 절대 수정할 수 없다. 습작이 없다는 말이다.
때문에 완성도에 어떠한 핑계라도 대는 것은 관객을 우롱하는 것이다. 따라서 결과물에 대한 아쉬움 역시 첫 작품이란 말로 위안을 삼을 수 없다.
그렇기에 '벌새'는 아쉬운 수작이다.
걸작은 아니지만 영화 '벌새'는 당신의 고요하던 감정에 돌을 던져 새로운 감동을 전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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